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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
 김원희  | 2014·04·05 03:55 | HIT : 4,472 | VOTE : 374 |
아니쉬 카푸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아니쉬 카푸어 (사진 : 권현정)

13개의 키워드, ‘카푸어의 우주’를 읽다

정리 | 편 집 부

아니쉬 카푸어는 새로운 지각 경험을 여는 경이로운 작품을 발표해 세계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왔다. 그의 작품 세계는 대단히 방대하여 그에 관한 비평과 수식 또한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동양/서양 정신/현상 물질/비물질 기표/기의 형식/내용 주제/소재 등에 얽혀 있는 카푸어의 깊고 넓은 예술 세계를 구체적이고 핵심적으로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편집부는 카푸어의 작품을 관통하는 13개의 조형적 키워드를 추출해, 독자들에게 그의 조형 세계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지름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아니쉬 카푸어〉전 설치 전경 2012│〈나의 붉은 모국(My Red Homeland)〉 앞에 모여든 취재진

01. 비물체 Non Object

아니쉬 카푸어의 대다수 작품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어딘가에서 생성된 듯 보이는 그의 작품은 감춰진 차원을 드러내고 우리의 지각을 변형시킨다. 거울의 조작이나 빈 공간의 효과, 혹은 흠뻑 젖은 색채를 통해 작품은 물체의 상태를 벗어나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2008년 같은 제목의 시리즈 〈비물체, 문〉 〈비물체, 기둥〉 〈비물체, 현기증〉에서처럼 ‘비물체’가 중요한 키워드다. 작품에 반사되어 비치는 관객들의 움직임마저 없다면, 그의 작품은 주위 환경과 섞여 들어가 사라져버린다.

02. 색과 단색 Color and Monochrome

색은 아니쉬 카푸어 예술의 근본이다. 색은 작품을 장식하거나 그저 덧붙인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카푸어의 색은 그 자체의 원리에 따라 순수한 상태로 존재한다. 색은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 1980년대 초반 안료로 뒤덮인 조형물에서는, 순수한 색채 안료를 사원 입구에 배치해 두는 인도의 전통 의식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카푸어에게 색은 비언어적인 것으로 향하는 입구이며, 색은 우리 신체의 숨겨진 친밀감과 공명하기 위해 단색이어야 한다. 카푸어는 말한다. “색채는 물체에 보이지 않는 성격을 부여한다. 형태가 통일된 전체로서 ‘앞’과 ‘뒤’ 그리고 ‘옆’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부여한다.”



〈큰 나무와 눈(Tall Tree and the Eye)〉 스테인리스 스틸 1300×500×500cm 2009 2012 삼성미술관 리움 야외 설치 장면

03. 숭고 The Sublime

카푸어의 예술은 마치 19세기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지향했던 것처럼, 다분히 숭고의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마치 관객이 자연의 원대한 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이해하는 과정과 같은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카푸어는 본래 창조된 상태 그대로를 추구하며 작가의 주관성을 제거하려는 강렬한 표현을 통해, 관객의 지각과 감정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의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마치 현기증이 날 것 같이 작품 속으로 삼켜 들어가는 듯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 감정은 철학자 칸트가 “상상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리고 이 정점을 뛰어넘으려고 분투하며 다시 상상력으로 침잠해 들어갈 때, 일종의 정서적 만족감에 도달한다”고 쓴 것처럼 숭고를 향하게 한다.

04. 원초적 신체 The Body Native

카푸어의 작품은 우리의 신체를 바짝 끌어들인다. 관객은 그의 작품에 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으로 신체가 동원되는 것은 비단 개별 신체만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작품과의 조우가 가능한 특정 신체와 보편적인 신체의 원초적 합일을 상정하는 것이다. 원초적 신체는 작업에서 작품과 대화하는 중재자로서 내재와 초월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의 역설을 드러낸다. 다른 신체와 하나가 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뒤섞이는 하나의 신체, 바로 ‘원초적 신체’다.



〈무제〉 코르틴 스틸 지름 800cm 2012 삼성미술관 리움 설치 전경

05. 물체의 표피 The Object Skin

카푸어는 사물의 표면과 겉모양을 가공해 표피 자체를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강력한 이미지로 만들어 낸다. 모든 감각이 머무는 자리인 표피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다. 이러한 중첩된 접합 속에서, 그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감각의 장소’ 또는 경계의 표시가 된다. 질감,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작품이 세상과 접촉하는 몇 미크론 단위까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작가의 개념이다. 따라서 이 표피에 대한 작가의 개념은 표면에 담긴 더 깊은 의미를 이끌어낸다. 그의 작품이 지니는 깊이는 물리적인 감각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PVC 막으로 이루어진 〈마르시아스〉(2002) 같은 기념비적 조형물이나 거울로 된 반사 표면을 지닌 〈C-커브〉(2007)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표피는 드러냄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환상의 장소이기도 하다. 때때로 형태와 질량 그리고 내연에 대한 허구의 관념이 여기에서 형성된다.

06. 풍경으로서의 작품 Artwork as Landscape

카푸어는 몇 차례에 걸쳐 도시의 공공 장소(〈구름 대문〉(2004) 등), 혹은 광활한 규모의 풍경(〈테메노스〉(2006)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흔히 ‘대지미술’이라고 불리는 이런 작품은 그 자체로 관념이나 형식을 지향하는 풍경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그 형태들은 새로운 지평선을 그려내고, 각 재료들은 새로운 부조를 형성한다. 각 순간마다 풍경은 그 자체로 세상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포착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차원으로의 길을 활짝 연다.



〈노랑(Yellow)〉 섬유유리, 안료 600×600×300cm 1999 헬싱키 쿤스트할레 설치 전경 Courtesy Lisson Gallery (Photo: Jussi Tianinen) ⓒAnish Kapoor

07. 빈 공간 Void

모든 물질화를 피하려는 속성으로 인해, 빈 공간은 결핍이면서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는 기존의 시각예술의 틀에 도전한다. 그는 형태 없는 것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빈 공간에 아우라를 부여했다. 빈 공간은 어떤 부름, 즉 작가가 곧 물체로 구현할 다른 곳으로부터 하는 약속이다. 빈 공간이 지닌 종교적 정신적 측면은 비록 이것이 결코 특정 종교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마치 영혼의 음악처럼 강한 마력을 발산한다.

08. 오목함 Concavity

카푸어는 “기하학은 내가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 중 다수는 숙련된 기하학적 조합의 결과물이다. 그 작품은 관객의 지각에 더욱 집요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측면에서, 어원상으로 ‘비워진’으로 정의되는 오목한 형태가 작가의 조형물에 자주 등장한다. 작가에게 이것은 공간 속에 마련된 새로운 공간이며, 튀어 나온 곡면을 저지하려 휘저은 손이 그려내는 곡선인 것이다. 작가는 오목한 형태로 세상의 ‘광학’을 조작한다. 그의 작품은 렌즈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여 우리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움푹 들어간 곳은 빛으로 채워지고 색채가 펼쳐지며, 오목함은 그것이 지닌 기하학적 형태 이상으로 더 광대한 공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관객의 시청각적 감각을 확장시킨다.



〈Greyman Cries, Shaman Diesm Billowing Smoke, Beauty Evoked〉 시멘트 2008 Courtesy the artist (Photo: Dave Morgan)

09. 유령 같은 빛 Light as Ghost

대단히 이지적이면서도 동시에 물질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카푸어의 작품은 언제나 빛의 문제를 상정한다. 그는 정해진 지점에서 빛을 발산하지 않고 빛을 분산시킨다. 작품은 빛을 ‘포획’하여, 이를 우회적이고 유령 같은 것으로 재창조한다. 우리는 그 빛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으며, 또한 무엇을 향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작품 자체에서 나오는 듯한, 마치 동트기 전의 빛과 같다고 해도 좋다. 나아가 이 빛은 종종 거울의 차가운 표면에 반사되어 액화된 투명성을 가진 순수한 색을 띤다.

10. 허구와 의례 Fiction and Ritual

카푸어는 통상적 의례가 지니는 진지함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형적 구성을 통해 제의적인 느낌을 능숙하게 표현한다. 그는 이 한없이 오래된 방식이 지니고 있는 심리적 효과를 인지하고, 그 장점을 이용해 관객이 작품에 정신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이 “일반적으로 예술은 유물론에 바탕을 두고 우리 문화의 정수를 뽑아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 생각에 이런 문화를 바탕으로 한 작업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더 깊은 층위에서 인간성에 말을 걸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의 작품 중 다수는 허구를 받아들이고 물체의 물질성을 제거하기 위해 허구를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 “작가는 물체를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신화를 건설하고 이 신화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물체를 읽는 것이다.” 그는 작품의 본질에 존재하는 가상적인 성격, 이것이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 작품을 뛰어넘도록 하고, “물체의 진짜 공간은 무엇인가? 당신이 바라보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 너머에 있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유도하는 것이다.



〈Shooting into the Corner〉 혼합재료 2008~09 빈 MAK     설치 장면 Courtesy the artist(Photo: Nic Tenwiggenhorn)

11. 해부학 연구: 피부를 벗긴 인체 모형 Anatomical Study: The Ecorche

마르시아스(산 채로 피부가 벗겨진 사티로스)의 신화적 형상과 카푸어의 유명한 작품의 제목을 참조해 볼 때, 피부를 벗긴 인체 모형은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이다. 해부학적 용어인 ‘Ecorche’, 즉 피부를 벗긴 인체 모형은 피부 아래의 근육을 보여 주는 그림이나 모형을 뜻한다. 르네상스기의 화가들은 이것을 가지고 그림 연습을 하곤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카푸어의 관심은 미술의 역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은 층위에서 그의 작품은 중개자 역할을 하는 피부 없이 삶을 추진하는 동력과 외부 세상 사이에 훤히 드러난 연합에 의존한다. 작가에 있어 피부를 벗긴 인체 모형은 그의 유명한 PVC막으로 만들어진 트럼펫들에서 확인되듯이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12. 자기 생성 Self-Generation

‘스스로의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다’는 의미의 제목인 〈스바얌브〉(2007)를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자기 생성은 작가에게 매력적인 주제다. 〈나의 붉은 모국〉 (2003)처럼,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주제 의식을 표현하는 모든 예술적 목적을 제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 자신은 작품 뒤로 사라지고 작품이 자체의 속도로 존재할 수 있게끔, 작품이 스스로 담고 있는 수수께끼를 홀로 보여 주도록 이끈다. 자기 생성은 인간의 영역 밖에서 사물이 스스로를 창조한다는 증거이다. 오직 예술과 자연만이 그것의 진정한 증인이다.

13. 엔트로피 Entropy

엔트로피란 어떤 체계의 무질서 상태를 말한다. 엔트로피는 자체의 혼란스러운 본성을 통해 카푸어의 작품이 지닌 지나치게 세련된 겉모습에 균형을 가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는 말한다. “마치 바로크 시대처럼 겉모습은 장식적이고 오직 표면에 존재하지만, 그 아래에는 어두운 비밀을 감추고 있다. 퇴폐와 무질서, 즉 엔트로피는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렇게 볼 때 결국 표면은 우리를 심란하게 하고 결점을 보임으로써 내부의 힘을 드러내며, 정리되지 않고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작가는 그의 작품 〈Greyman Cries, Shaman Dies, Billowing Smoke, Beauty Evoked〉(2008~09)와 같이 컴퓨터로 생성된 시멘트 조형물처럼 작품에 담긴 균형과 무질서를 뒤섞어 하나의 아찔한 주제로 담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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