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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드 굽타에게 보내는 편지
 김원희  | 2014·04·05 03:54 | HIT : 3,787 | VOTE : 344 |
수보드 굽타에게 보내는 편지

글 | 니콜라 부리오·프랑스 미술비평가, 큐레이터

우리가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을 때 당신은 고향인 동인도의 가난한 지방 비하르(Bihar)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하던 젊은 작가였습니다. 일상적이고 흔한 오브제들, 즉 부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일상용품을 땅에 늘어 놓거나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설치 작품들을 제작했었죠. 이 철제 오브제는 당신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소재이자 하나의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이 오브제가 갖는 의미는 서구 세계에서 본 관점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죠. 인도에서 이 오브제는 일상 생활의 일부로서 대중 문화를 상징합니다. 반면 ‘서구’라는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서는 그 번쩍거림이 사치스러운 세계를 연상하게 합니다.(크롬 소재와 번쩍이는 표면을 통해 욕망과 소비의 세계를 확대해서 보여 주는 제프 쿤스의 조각 작품처럼 말이죠.) 말하자면, 당신의 작품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재 자체가 문화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개념적인 함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는 물품이 인도에서는 일종의 불안정함에 대한 어휘(Lexicon)가 됩니다. 즉 당신의 작품은 물질의 공급이 넉넉한 지역으로부터 부족한 지역으로의 이동을 매개하는 교역자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각적 원형들로 세분화된 미니멀리즘

어떻게 보면 현대미술 자체가 이러한 성격을 지닌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르셀 뒤샹이 가게 선반에서 병을 하나 가져와 미술관에 전시했을 때, 이미 그는 이와 같은 논리에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성을 노동과 생산에 반대되는 지점에서 상업적인 것의 부흥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현대의 작가는 노동 계층들이 했듯이 이마에 맺힌 자신의 땀으로 무언가를 생산한다기보다는, 여러 물건들을 단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역할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작가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직접적인 노동이 부재하거나 기술자들에게 작업을 위탁하고, 아니면 아예 이러한 방식이 모두 부재하는 상황이 문제시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러한 추세야말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상업과 금융 활동에 대해 전통적으로 지속되어 온 부정적인 명성 뒤에 숨겨진 이면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미술은 치환(Disoplacement), 그리고 대상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의미 생성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현대 경제학은 이러한 예술적인 과정의 혼란을 합리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도의 일상 생활용품과 같은 소비재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조각가로서의 본능을 따르고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소재를 가져 와서 그 형태를 상호연결하고 변화시키는 조각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클래스 올덴버그의 미국 대량 소비사회를 상징하는 사물들, 장 팅겔리의 고철, 요셉 보이스의 에너지 전도체 물질이 그랬듯이 당신은 작업에 있어 주변 환경과의 일체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금 언급한 작가들의 작업 방식은 고유한 형식적 원칙을 정립해 냄으로써 예술적 성과를 이룬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작업에서 보여 주고 있는 이러한 통합의 제스처는 일부 비평가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죠. 그들은 당신의 작업 경향이 이미지 생성 과정을 지나치게 쉽게 만들고, 즉 예술의 ‘제로섬(Zero sum)’을 추구한다고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작품을 현대 인도의 미니멀리즘을 탄생시킨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파악합니다. 20세기 미국 미술의 조류나 탄트라 미술의 기하학적 문양과도 거리를 둔 당신의 작업 경향은 다양한 시각적 원형들로 세분화된 미니멀리즘입니다. 당신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이미지를 통해 가감 없이 현실 세계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측면을 표현해 내려고 하기 때문에, 작품의 표면은 결코 매끄럽거나 일관적일 수 없습니다. 힌두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그 어떤 것도 단 하나의 원리원칙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형태’란 아무리 기본적인 것일지라도 그 바탕을 이루는 수많은 원천들을 근본적으로 무화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당신의 조각 작품이 보여 주는 기본적인 윤곽은 소재의 기능이나 특성을 그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술계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이슨 로즈나 토머스 허쉬혼의 작품, 그리고 댄 브라운, 자비에 베일런, 제프 쿤스 등과 같은 작가들의 ‘모노블럭(Mo nobloc)’ 조각에서 보이는 ‘전파(Dissemination)’의 개념이 그 중 하나입니다. ‘전파’란 몽타주와 관련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소재들이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전체가 각 부분보다 더 큰 무언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각 부분들은 어떤 특성을 내재하거나 공유한 채 서로 연결됩니다. 모노블럭 조각은 조각적 형식과 이미지를 결합함으로써 혼성적인 오브제를 창조합니다. 사실 당신의 작품은 이러한 원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다른 한 가지 원칙 즉 다양성과 고유성의 대치되는 가운데 조성되는 긴장감이야말로 바로 작품의 출발점입니다. 당신의 작품은 1960년대 아르망(Arman)이 제시한 ‘집적(Accumulation) 시리즈’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아르망의 ‘집적 시리즈’는 유사한 오브제들을 함께 사용하여 서로 다른 조각 작품을 창조함으로써 대량 소비사회의 기록을 수집하는 아키비스트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입니다.

세속성과 신성함의 교차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일이란 무엇보다도 하나의 새로운 영역을 규정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영역은 고정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면서 개념적인 연결성을 토대로 구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페터 슐로터딕은 그의 삼부작 《영역들(Spheres)》에서 현대성이 ‘세상 속의 실재’로서의 인류에게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알려면 가정의 일상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설명합니다.1) 그는 20세기란 ‘특정한 장소에 머문다’는 의미이자, 다시 말하면 ‘공간 생산에 관한 현대적 문법’을 생산해 냄으로써 우리의 거주 공간을 명확히 정의했다고 규정합니다. 당신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공간은 바로 부엌입니다. 당신은 부엌이라는 공간에 특별한 애착을 느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부엌을 마치 사원처럼 신성함이 가득한 공간으로 이해했다.” 이 지점에서 세속성과 신성함이 함께 공존하며, 일상의 동작들은 현학적 의미나 종교적인 방편으로 그 의미의 영역을 확장합니다. 음식과 성스러움 간의 교차점이 생성되는 지점은 매우 무궁무진합니다. 부엌이라는 공간과 음식 문화는 물질성과 정신적인 것이 서로 만나는 지점입니다. ‘음식의 공유’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활용하는 또 한 명의 작가로 태국의 리크리트 티라바니야가 있습니다. 그는 불교 사상을 미니멀리즘과 개념적 예술 어휘와 연결하여 노마디즘과 덧없음, 또 음식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설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이렇게 기존의 생각을 벗어나는 남다른 방식은 현대 문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의 작업은 인도의 시각적인 문화가 담긴 점에서 팝아트와 연결되는데, 사실 티라바니야 역시 이와 유사한 전략을 취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문화적인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동일성을 따르는 이 시대에, 예술이 각 지역의 언어와 세계관 사이의 차이를 규명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불일치(Divergence)’야말로 창조의 근원입니다. ‘차이’란 단지 민속적인 것이나 특정 맥락 속에서의 특수성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시각에서 비롯될 뿐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식민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동의어라 볼 수 없습니다. 포스트모던적인 입장에서 보는 ‘차이’의 개념이란 경제적 신식민주의를 내재한 트로이의 목마입니다. 문화를 향한 새로운 시각을 탐구하는 작업들은 창조적인 잠재력을 생산해 내는 ‘차이’의 기본 원칙을 고찰하게 마련입니다. 힌두이즘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힌두이즘이 현대적인 형상과 혼합될 때, 즉 낯선 사고 또는 행동 방식과 섞일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요? <믿음의 도약(Giant Leap of faith)>(2006)은 콘스탄틴 브랑쿠지의 조각 <끝없는 기둥(Endless Column)>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힌두교의 특정 이미지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상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당신은 의미나 텍스트의 편린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해 내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사실 이 ‘번역’ 행위야말로 핵심적인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행위는 오늘날 사회에서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는 현대성, 그리고 변동과 내재적 저항에 기반한 현대적이면서도 글로벌한 제스처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적인 보편성(Universalism)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포장한 껍질에 불과한 것으로,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하에 우리는 상대주의와 친숙해졌지만, 보편주의란 경제적인 힘의 흐름을 조용히, 그러나 공격적으로 매개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점점 글로벌화되고 있는 세계 속에서 ‘차이’로 인식되는 각각의 문화는 소비의 대상으로, ‘소수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은 즉 소비자가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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