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weonhee.com

  

■ 수필 / Essay


아버지
 김원희  | 2020·12·29 12:30 | HIT : 354 | VOTE : 75 |
청소년시절 아버지는 내가 바라보는 기성세대를 대표했기에 아버지는 사회를 바라보는 창이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 한국을 떠날 생각도 여러 번 해보았다.


호랑이 같던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암 3기로 병원에 누우셨다. 사역을 그대로 두고 한국에 들어와 찾은 병실에서 만난 아버지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밥을 떠먹여드려야 했고 한 달간의 병간호 후 나는 선교지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그후로 3년 반 동안 투병하셨다. 나 자신도 선교지에서 병을 얻어 한국에 들어와 한 달간 병원에 눕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봐 한국에 들어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퇴원 후 친구 집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암병동 중환자실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여러 중환자들 속에 함께 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우산을 가져다 주기 위해 비가 오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오던 풍경 하나가 다가왔다. 전화도 없던 시절 대학 교정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다 만나서는 딸에게 잘해준게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이틀 동안 멈추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났다. 늘 나에게는 다른 형제들에게 보다 더 완벽함을 요구하셨던 아버지는 아버지 형제들 앞에서도 나의 조그마한 잘못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의 부조리가 싫었다. 나는 전적인 은혜로 영혼의 구원을 받고 나서 아버지를 용서했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온밤을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지켰다. 유난히 아름답게 노을이 지던 날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거울을 보며 문득 문득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한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던 나는 아버지가 가졌던 그 감성과 아버지의 기호를 가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India Art Fair Review 2016 -인도의 정신을 보다.  김원희 16·10·26 3890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