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weonhee.com

  

■ 평론 / Criticism


김원희전에 부쳐 -이재언 1992
 김원희  | 2006·01·06 20:00 | HIT : 5,732 | VOTE : 1,388 |
김원희 전
1992.10.2 (금)-10.15(목)
자하문 미술관 기획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119  02-358-6808
 
김원희 전에 부쳐

 김원희의 그림 앞에 서면 어떤 광기(mania) 같은 것이 감도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니 느끼기 보다는 거기에 빠지게 된다고 해야겠다. 그것은 그녀가 관념이나 손으로 그린다기보다는 ‘신들림의 혼(魂)’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들 속에서 이성적 질서나 형식적 완결이란 당초부터 전제되어있지 않다. 원초적인 무의식이 투영된 자연 그 자체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들은 생명체로서의 존재의 본능적 충동과 운동이 대사(代謝)하는 분비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이성 이전의 것, 의식 이전의 것, 현상 이전의 것, 언어 이전의 원초적이고 원생적인 생명을 향한 모종의 몸짓들이야말로 그녀의 작품들이 가지는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녀의 표현주의적 화면이 그다지 집단적 정서에 밀착해 있지는 않다.

 특히 80년대 초부터 유입된 새로운 표현주의의 거친 감성과 어두운 서정의 일단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가 아주 일관되게 견지한 미학의 근간이 바로 모순적 세계에 억압된 자아의 해방에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미의식을 무장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노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는 인습이나 고정관념, 제도, 틀에 박힌 일상 등으로부터 순수자아를 보호하고, 숨 막히는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심리학적 측면에서 현실에의 부적응에 대한 몇 가지 심리기제(心理機制) 이론은 그녀의 작업행위와 양식에 보다 용이하게 접근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그녀에게 지배적인 심리기제는 공격적 기제이다. 억압적인 세계를 향한 반항과 발산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거칠기가 이를 데 없이 격렬하면서도, 에너지가 과잉 분출하는 반항적인 필치이다. 이는 복부 깊숙한 데서 솟구쳐 나오는 고함과 절규의 오실로그램(Oscillogram)과 같이 굴곡이 심하게 흐트러져 있는 어떤 파열 상태를 이루고 있다. 
 
 또한 색조는 강열하면서도 무언가 끈적거리고 냉기가 감도는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이는 현란한 사이키 조명과도 같이 돌아가는 세계현상 속에 산화되어가는 자아의 존재상황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심리기제는 결국 질식할 것 같은 현실에 대한 작가 특유의 이상체질(異常體質)에 근거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자기 도피적 성향을 드러내는 기제가 있다. 이를 테면 화면 어느 곳에는 원생동물 이미지와도 같은 형체가 웅크리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일종의 모태 회귀를 향한 현상학적 퇴행에 다름 아니다. 행동적 퇴행이 아니라 순수자아를 담보로 한 일종의 환원적 인식에서 그러하다.

 그런가하면 다분히 방어적인 태도로 상징이나 기호에 의지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원생적(原生的) 존재의 형태나 음과 양, 유와 무, 명과 암, 생성과 소멸 등의 이치(理致)를 담는 표상이 근작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본능충동과 외부 세계와의 대립과 긴장에 내면적 승화(昇華)와 다분히 외양적 보상(補償)을 오가는 방어적 기제의 한 단면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알 수 있는 바는 그녀의 미적 태도가 병적인 회의주의에 치우쳐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현실에 대해 극도의 긴장관계를 자초하고 있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자기애와 생명에의 애정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자아를 집단 무의식의 탐구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상징적 작업은 자기애의 차원으로 보다 넓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각형의 화면을 거부하고 비정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나, 전통적인 캔버스 천을 대체할 수 있는 화폭을 부단히 실험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의 한 실마리일 수 있다. (특히 삼베나 아사, 면, 나무, 종이 등의 재료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이 근래 들어 빈번한 것도 주목할 만 하다.)

 김원희에게 있어 그리기의 행위는 하나의 역설을 안고 있다. 즉 그린다는 것은 또 다른 지움의 행위인 것이다. 그녀에게서 작업은 삶의 치장이 아니라 존재를 둘러싼 편견과 억압적 전제들의 사슬을 하나 둘씩 벗겨내는 인식과 행동의 과정이다. 순수한 존재의 본질은 관념이나 논리의 구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쳐 놓은 허상의 그물과 사슬을 해체하는 데 있다. 요컨대 그녀가 상징화하는 것도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생명을 향한 것이지, 조작적이고 현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완결이 없는 것일까. 그만큼 남겨놓은 문제도 많다. 벗겨 논 관념의 껍질들 분량만큼이나 말이다. 
                                                                                                 이재언 (미술 평론가)
  
  Towards The Solo Exhibition of Kim, Weon -Hee  김원희 06·01·06 9509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